top of page


코트 스틸링
이 영화는 90년대 뉴욕의 공기를 그대로 품고 있다. 먼지가 내려앉은 바, 깜빡이는 네온사인, 술 냄새가 스며든 좁은 골목들. 그 한가운데서 남자는 아무 기대 없이 하루를 버틴다. 그리고 우연히 친구의 고양이를 잠시 맡는다는 단순한 일 때문에, 모든 게 뒤틀려 버린다. 무너진 인간의 잔상 행크는 특별히 나쁜 사람도, 선한 사람도 아니다. 그냥 지쳐 있는 평범한 인간이다. 그의 눈빛엔 포기와 체념이 섞여 있고 술잔을 비우는 손끝엔 오래된 후회가 묻어 있다. 이 영화는 그를 구원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무너진 인간이 어떤 속도로 끝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를 냉정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도시다. 모든 장면이 차갑고 불친절하다. 눈부신 고층 빌딩 대신, 낡은 아파트와 어두운 골목이 배경으로 깔린다. 끝내 남는 건 냉소와 허무 모든 게 끝났을 때, 관객이 느끼는 건 통쾌함이 아니다. 그저 허무하다. 행크가 바라보던 뉴욕의 밤처럼 영화는 불빛

Manager
10월 30일


불사의 약
이 영화는 처음부터 낯설었다. 좀비물이라고 생각하고 봤는데, 정작 가장 무서운 건 좀비가 아니라 사람의 욕망이었다. 영생을 얻기 위해 사람들이 점점 인간성을 잃어가는 과정이 나는 좀비 보다 더 섬뜩했다. 생명을 연장하려는 사람들, 멈출 줄 모르는 욕망 약을 손에 넣은 사람들은 처음엔 모두 같은 말을 했다. “이제 두려울 게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얼굴엔 기쁨 대신 공포가 스며들었다. 죽지 않는다는 건 결국 끝나지 않는 고통을 의미했다. 한 사람씩 미쳐가고, 서로를 경계하는 모습이 잔인하게 현실적이었다. 좀비보다 인간이 더 무섭다 불사의 약이 만들어낸 건 죽지 않는 육체지만, 이미 영혼은 썩어 있었다. 몸은 살아 있는데 마음은 무너진 사람들 그 아이러니가 이 영화의 핵심이었다. 결국 살아 있다는 건 단순한 생명 유지가 아니라, 감정과 기억을 함께 간직하는 일이라는 걸 보여준다. 어둡지만 철학적인 여운 영화가 끝나고도 한동안 멍했다.

Manager
10월 29일


룻과 보아스
믿음보다 따뜻함이 먼저 느껴졌던 영화였다. 성경에 대해서 잘 아는 이들이라면 룻과 보이스라는 인물에 친숙함을 느낄 수 있다. 처음에는 그러한 사실을 잘 모르고 봤기에 이 영화는 나에게 음악과 사람, 두려움을 안고도 다시 노래하려는 한 여자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음악이 배경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로 느껴졌다 룻이 무대를 떠나 테네시 작은 마을로 내려왔을 때, 음악은 단순히 직업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음악은 도망이고, 동시에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다시 노래할 용기를 내는 장면이 유난히 와닿았다. 가창보다 감정이 먼저 들렸달까 그 한 장면에서 이 영화의 정체가 완전히 드러난다. 사랑은 새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다시 믿는 일 보아스와의 관계도 전형적인 로맨스처럼 급하게 불붙지 않는다. 둘 다 조용히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다. 그래서인지 대사보다 시선이 더 따뜻했고, 음악보다 침묵이 더 크게 느껴졌다. 룻의 이야기는 결국

Manager
10월 28일


멍청씨 부부 이야기
처음엔 그냥 엉망진창 코미디인 줄 알았다. 하지만 보다 보면, 이 영화가 단순히 웃기기만 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세상에서 제일 별난 부부가 세상을 자기 멋대로 바꾸려다 결국 자기들조차 꼬여버리는 이야기, 그 안에는 어쩐지 우리 주변에서 본 듯한 인간의 욕심과 허세가 비틀려 들어 있다. 더럽고 유쾌한 혼돈 멍청씨 부부는 한마디로 정리되지 않은 인간이었다. 자기 집도, 자기 생각도 늘 엉망이다. 그런데도 둘은 이상하리만큼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다. 이 엉망진창 부부의 일상은 때때로 짜증이 나지만, 또 묘하게 웃기다. 그 유치함 속에서 어린 시절의 장난기가 떠오르고 한편으론 어른들이 가진 고집이 비춰진다. 유머 뒤에 숨어 있는 풍자 이 영화가 재미있는 건 모든 장면이 어리석음을 통해 세상을 비추는 방식이다. 멍청씨 부부의 행동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그들이 남을 깔보며 세상을 바꾸려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결국 웃음은 점점 불편함으로

Manager
10월 24일


데몰리션
이 영화는 잃음 에 대한 이야기지만, 그 상실을 다루는 방식이 매우 독특하다. 대부분의 영화가 눈물과 슬픔으로 시작된다면, 데몰리션은 정반대다. 주인공은 아내의 죽음 앞에서도 아무 감정이 없다. 오히려 세상이 멈춰버린 것처럼 덤덤하다. 그게 더 섬뜩하고, 그래서 더 진짜 같았다. 감정이 고장 난 사람 처음엔 이 남자가 냉혈한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건, 너무 많은 걸 느끼고 있다는 반증 같았다. 그는 세상을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오히려 무너뜨려 보려 한다. 이 영화는 이름처럼 해체의 영화다. 관계, 일상, 감정 모든 걸 분해한 뒤에야 비로소 진짜 형태가 보인다. 그는 아내를 잃은 게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잃어버렸던 거다. 평범함 속의 구원 이 영화가 좋았던 건, 인위적인 위로를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끝까지 완전히 치유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멈춰 있던 시간이 조금씩 흐르기 시작한다. 그게 이 영화가 보

Manager
10월 23일


미 비포 유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따뜻하지만 잔인했다. 로맨스 영화의 틀을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는 행복보다 현실이 더 많았다. 엉뚱한 그녀와 닫힌 세계 주인공은 말 그대로 엉뚱하고 밝았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웃음을 터뜨리고 때로는 너무 솔직해서 민망할 정도였다. 그런 그녀가 냉소적이고 단단히 닫혀 있던 남자에게 다가가는 모습은 처음엔 어색했지만, 점점 따뜻해졌다. 마치 차가운 공간 안에 난로가 하나 켜지는 느낌이었다랄까? 웃음 뒤에 숨어 있는 무게 이 영화의 감정선은 웃음과 눈물이 교차한다. 서로를 통해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이 예뻤지만, 동시에 그 변화가 오래 가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깔려 있었다. 그게 이 영화의 잔인한 진심이었다 영화가 끝났을 때, 눈물은 나지 않았다. 대신 묘한 정적이 남았다. 행복했던 기억이 슬픔으로 변하고, 슬펐던 순간이 결국 위로로 남는 그 감정 그게 바로 이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사랑의 모양이 아닐

Manager
10월 21일
bottom of page
